2021년 9월 19일 주일예배설교문
[오직 정의를 물같이: 암 5장 14-15, 21-2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아프가니스탄을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 폴란드 난민센터에 머물던 꼬마 형제가 독버섯을 먹고 잇달아 죽은 일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바르샤바 난민센터에서는 하루에 세 끼 식사를 잘 주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음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센터 근처 숲에서 가족이 버섯을 채취해 수프를 끓여 먹었는데 이게 독버섯이라 중독되어 5세와 6세 된 형제가 연이어 죽고 만 것입니다.
세계 곳곳 다른 나라로 탈출한 이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 때문입니다. 미국으로도 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들어갔는데, 어느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보니까 이들에게 형편없는 음식 등을 제공하는 등 난민들의 처우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장악된 이후 많은 난민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겪는 비극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다른 전쟁에서 흩어진 난민들의 상황과 같은 거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390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라는 지위로 들어와 있습니다.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대우에 한국에 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인터뷰를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진천에서 임시로 생활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인데, 다른 나라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과는 달리 좋은 대우를 받고 있어서 외국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정부나 국민, 기업들이 이들에게 부족하지 않고 넉넉하게 지원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인 거죠. 언론매체 혹은 외국인 근로자 선교단체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참담한 상황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근로자 사망사고 8명 중 1명이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요. 임금 체불은 수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장에게 잘못하면 출국당할까 봐 이야기도 못 합니다. 미담도 많은 것 같지만 최악의 상황들이 참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이들에 관한 관심을 조금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이 바로 총회에서 제정한 외국인 근로자 선교주일입니다. 아마도 외국인 근로자를 현재 100만여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각 교단의 산업선교회나 외국인 근로자 선교회 등을 통해 이들을 돌보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로 보면 돌봄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이들은 미미합니다. 이들 근로자나 외국인 체류자, 난민 등은 성경에서 볼 때 나그네인 거죠.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대우하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자였기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아마도 이번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을 도와주는 것도 우리나라가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들에게 입었던 은혜를 보답하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좀 더 성숙한 의식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말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나 한 사람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일에 힘쓰는 거룩한 자녀들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선한 일은 바로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나를 통해 생명이 흘러가 죽었던 자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는 멀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로서 오직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선이어야 합니다. 악은 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제2의 창조된, 즉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길입니다.
암 5: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이사야 30장 18절에서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앞에 결코 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선언합니다.
암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우리가 유일하게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악의 편에 서지 않도록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선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우리 집안에 세워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안에도 분명 세워야 하지만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바로 세상 속에서인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교회는 그런 점에서 율법적인 틀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다른 이들, 다른 인종, 다른 종교인들을 바라봄으로써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실은 이런 일을 교회가 많이 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정의와는 너무도 멉니다.
그런 행동의 끝은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정의 편에 서지 못하고 악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저들이 다시금 하나님 편으로 돌아선다면 그 남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변함없이 악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서도 선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악, 악, 악, 극악, 악, 극악” 이어지는 왕마다 평가가 이랬습니다. 그러니 백성들 또한 기대할 수 없었던 거죠.
이것은 북 왕국뿐 아니라 남 왕국 유다에게서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종교적인 절기들과 성회를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받아줄 것이라고 기대했고, 절기를 통해 이어져 왔던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하리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것은 신약에 와서 바리새인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기대를 꺾어 버리셨습니다.
암 5: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나아가 저들의 제사를 거부하셨습니다. 암 5: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같은 주전 8세기 예언자인 이사야도 남 왕국 유다 백성들을 향해 같은 어조로 예언하였습니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그와 같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암 5: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그런 가증한 모습을 하나님은 외면하고 보지 않으시고 듣지 않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못된 것을 심하게 대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자녀들이 성장해가면서 부모의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경우는 대못까지도 박는 일도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의를 왜곡시키고, 공의를 땅에 내팽개치는 메마른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정의가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어떻게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정의의 편에 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가장된 정의, 거짓된 공의가 나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암 5:24에 의하면 우리 삶에서 정의와 공의의 발현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가 흐르는 삶, 즉 연속적인 삶에 대한 요청이어서입니다.
우리 삶에 정의가 흘러넘치는 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처럼 어마어마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이웃을 향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우리 주님께 행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롬 12:15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많은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공감 능력입니다. 이들에게는 기쁨에 함께 참여하고 슬픔에 함께 슬퍼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걸 극복하고 함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은 인도차이나에 대한 선교적인 명확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뉴노멀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교적인 전략을 가져야 할까요?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로 나아가는 선교도 중요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근로자의 수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에 거하고 있는 저들을 향한 선교와 기도와 지원이 이루어지는 선교 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100만여 명의 이방 나그네가 이 땅에 있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우리 지체들과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작은 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과 재정을 허락해주시어서 이들에게 대한 작은 돌봄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들은 나그네 된 자들입니다.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 일도 성문에서 정의를 세워가는 일이라고 믿어요.
많은 이들이 불의한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은 세상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 존중의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오직 교회가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작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 우리로부터 시작될 때, 거기에 많은 이들이 동참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가 메마르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뜻함이 느껴질 때 그 마음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기는 계명도 열심히 지켰고, 할것을 다했다고 하는 청년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에게 도덕적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스며드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 따름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회복된 정의를 세상에 반영하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 가짜 정의를 구현해 갈 뿐입니다.
오늘 삶의 현장에서 사랑과 정의를 세상에 반영하는 왕 같은 제사장 되어 하나님의 정의가 흘러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일예배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장 4절 (0) | 2021.10.31 |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 미 6장 6-8절 (0) | 2021.09.26 |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사 30장 18-26절 (0) | 2021.09.13 |
주께서 행하신 아름다움 일을 알리라: 사 12장 4-5절, 욘 4장 1-11절 (0) | 2021.09.05 |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 6장 18-20절 (0) | 2021.08.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