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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 미 6장 6-8절

by 최수근 2021. 9. 26.

2021년 9월 26일 주일예배설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 66-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요? 어린 왕자 두 번째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주인공 10대가 되어서 돌아온 어린 왕자와의 대화에 그 답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물론 일편단심 민들레와도 같은 마음도 있지만, 그 속을 알 길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여간 쉽진 않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일은 과연 어떨까요?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이것이 쉬운 것인지, 어려운 것인지를 파악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신지를 아는 일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읽어낸 것에서부터였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해물들이 없어야 합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죠. 자기감정, 자기 생각, 자기 기호, 자기 경험이라는 필터링이 더해지는 순간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읽어내고 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쉽게 범하는 실수입니다.

미가서 66-7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자신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지? 심지어 자신의 죄를 위해 자기 자식까지 드려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저들의 고민을 하나님께서 과연 마음으로 받으실까에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거부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기반한 삶은 통째로 사라지고 그럴싸한 형식만 남아있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론 출애굽 당시 5대 제사법과 정결법을 소상하게 알려 주셨지만, 그와 같은 형식, 예전, 결례법이 우선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예전을 의미 있게 만들 요소, 하나님의 마음이 기뻐하실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자로서의 덕목입니다.

바울은 그런 의미에서 롬 121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예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들릴 영적 예배니라.” 그것은 거룩하게 구별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예배이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다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하게 여기시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눈이 가리어져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다 보니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미가 6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시는 세 가지 덕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의입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불의를 떠나, 불의는 옛사람의 덕목입니다. 지금 새 사람으로서 우리는 오직 정의를 행하는 자여야 합니다.

지난 두 주일간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충만하게 실현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와 함께 정의를 정의되게 하는 것은 신적인 사랑이 더해질 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세상의 정의와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둘째로 인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를 헷세드라고 합니다. 긍휼, 인애를 의미합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 게임을 만들었던 노인이 죽기 전 주인공과 마지막 내기를 하려고 합니다. 창밖 한쪽 길 구석에 한 취객이 쓰러져 있는데 누군가 그를 위해 달려들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내기였습니다.

이 장면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겹쳐 보였습니다. 제사장도 못 본 척 지나가고 레위인도 슬쩍 지나가고 말았지만 사마리안인은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닦아주고, 치료를 위해 여관에 강도 만난 사람을 맡겨놓습니다. 앞에 두 사람은 소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요?

우리에게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랑의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니 그런 예배자의 예배는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 쉐키나의 영광도 없습니다. 어떤 채움도 어떤 위로도 어떤 회복도 있을 수가 없죠.

이렇게 이상의 두 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인자, 즉 헤세드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품이 삶으로 배어 나오게 됩니다. 그런 삶이라면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지 않겠어요.

셋째, 하나님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겸손을 요청하셨습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길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어서입니다. 겸손이 없는 동행은 결코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쑥불쑥 자기가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성질 죽이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동행은 곧 파탄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자로서 서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왜 충족시켜드리지 못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 각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고자 할 때는 하나님께로 온전히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인지하기보다는 주변의 많은 다른 것들에게 마음을 사로잡혀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성경은 기억알라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공의롭게 행하셨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그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의롭게 행한 일을 이들은 기억하고 알아야만 했습니다.

6: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에서 공의롭게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은 복잡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 길에 바로 서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로부터 흘러오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세상으로 흘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질책 앞에 설 뿐입니다. 23:23 “화 일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우리의 시작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인애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조금씩 수정하면서 가기보다는 다시 믿음의 원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인애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구원의 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각성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삶으로 들여지는 온전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흠향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기쁨으로 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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