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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일상에 성실한 삶: 마 25장 14-30절

by 최수근 2024. 3. 17.

2024년 1월 21일 주일예배

[일상에 성실한 삶: 마 25장 14-3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일은 불편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분석과 적성검사를 통해 어떤 분야에 적합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일은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특별한 능력만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일상성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매일 변함없는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지 않다면 반짝하다가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거의 모든 정부에서 보면 인사 검증에 실패한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권력자의 눈에는 능력이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일상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상이 성실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이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모여 우리의 생을 만들어갈 때 그것이 값진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일상성은 어떠한가요? 한 지점이 아닌 전체 삶의 영역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평가는 어떨까요? 어떤 것을 주목해 보실 것 같습니까?

예수님은 감람산 강화를 통해서 종말론적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연결해서 보면 정말 주어진 자신의 일상에 충실한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도 그런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접할 때 당장 귀에 들어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의도한 것이 전혀 다른 것에 있음을 종종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은 돈, 달란트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거죠.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큰돈을 맡기시면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행복한 꿈을 꿔봅니다. 그러나 이건 한가롭게 그런 꿈을 꾸라고 말씀하신 비유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어떤 관계 안에 있으며 매일 그분의 일 가운데 있는가의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14절의 말씀을 통해 천국은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를 시작하셨습니다. 소유를 맡긴다는 것에서 주인이 종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소유를 위임하는 과정에서 분배의 기준을 분명하게 사용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다른 양의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능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걸 보면 주인이 종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에 그릇에 맞추어 달란트를 지불하였던 겁니다.

그렇게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달란트가 되었든, 어떤 단위의 돈이 주어졌든 그에게 기회는 균등한 것입니다. 액수가 아닌 능력이 기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것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종들에게 맡긴 금액은 큰돈이었습니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일일 근로자 수당입니다. 8달란트면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주인이 맡겼다는 것은 그냥 손에 쥐고 있으라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돈을 그들이 활용하도록 위탁한 것입니다. 주인은 주어진 기회를 통해 일상에서 그런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한 방을 노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상성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책임 아래서 충성스럽게 일할 때 우리의 능력은 성장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만약 그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옹답하고 쓰임 받을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줄어들어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매일매일의 작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우리에게 기대하시지 않겠습니까?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런 주인의 의도를 잘 파악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했습니다.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어떤 장사를 했는지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적절하게 주인의 소유를 발판 삼아 갑절의 이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위험성 있는 펀드와 같은 것에 투기해 한몫 챙긴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매일 같이 그가 행동한 결과로 그는 이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마찬가지로 주인의 목적을 알고 자기의 재능대로 장사를 하여 갑절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25: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주인이 준 달란트는 두 사람에게 그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힘 삼아 열심히 살아내었습니다. 그 결과는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주인에게서 받은 것으로 크든지 작든지 간에 자신들의 삶을 꾸렸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매일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종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른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이 왜 그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는지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돈을 땅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왜 땅에 묻었을까요? 굉장히 큰돈을 받은 종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사기라도 당해서 금전적인 손해를 입는다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돈과 분리되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능력에 맞게 재산을 위임해주었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행동하기보다는 땅에 숨김으로써 스스로 주인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와 함께 묻어 둔 달란트는 땅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달란트를 묻어 둠으로써 한 달란트와 그 사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 그의 일상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주인과는 무관하게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주인과 단절되었다가 어느 날 주인이 왔다는 소식에 돈을 다시 땅에서 파내었을 뿐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주인은 세 명의 종과 결산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냥 종들의 능력에 따라 나누어주었지, 그것으로 돈을 남기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자연스럽게 결산하였습니다. 이렇게 결산을 한 것은 주인이 그들에게 맡긴 소유를 어떻게 잘 활용하였는지 그들에게서 듣고자 함입니다. 실은 남긴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임했지만 손해를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인간적인 결산을 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임했느냐에 있습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가 원금 다섯 달란트에 이익금 다섯 달란트, 합해서 열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 앞에 섰습니다.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런 종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주인이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금 다섯 달라트가 결코 적은 일은 아닙니다. 엄청난 재산을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주인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하였을까요?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갑절의 이익을 남기고 자랑스럽게 주인 앞에 섰습니다.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하면서 그에게 더 많은 일들을 맡길 것이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에게 커다란 축복입니댜. 고대사회에서 주인과 종의 위계질서는 넘볼 수 없이 견고했습니다. 종은 기본적으로 주인의 재산 목록에 들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종에게 주인은 상상 이상의 배려를 하였습니다. 생각할 수 없는 큰돈을 맡길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놀라운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어서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주인 앞에 섰습니다.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종은 먼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자기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기보다는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그런 생각에 그는 최소의 행동을 통해 자기 책임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하였던 겁니다.

그런 핑계를 대는 종을 향해 주인의 평가는 냉담했습니다.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주었습니다.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는 돈을 땅에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은행에라도 맡겨서 이자를 받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최소한의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인은 그 종에게서 맡겨 두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았습니다. 그의 한 달란트는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그러면서 주인은 종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말씀은 부익부 빈익빈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기독교는 단지 불편한 종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 말씀에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종은 그러기에 맡았던 달란트도 다시 회수당하고 결국 주인의 자리에서 분리되어졌습니다. 주인은 그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았습니다.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세 번째 종은 한 달란트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주인이 그에게 그 돈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는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기에 종은 자유롭게 그것을 누렸으면 다른 두 종처럼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종은 자신의 선택이 주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댐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책임을 주인에게 떠넘겼습니다.

이런 세 번째 종의 모습이 종종 우리들의 모습과 겹치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다가 자기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몫까지 하나님께 떠넘기는 자는 아닌지?

이 비유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 삼기 위해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맞는 삶을 어떻게 우리 일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결산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달란트의 분량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결산의 기준은 그날그날의 손익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살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맡겨주신 우리의 삶을 책임감 있게 활용한다면, 우리는 주인의 칭찬과 더불어 그가 확장해 주시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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