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 주일예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살전 5:23-2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도 그 삶이 불신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들이 실은 허다합니다. 오히려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 그 이전의 삶보다 문제가 더 많아지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서 제거되지 못한 옛사람의 영역이 여전히 그 삶에 주류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견고한 진이라고 하죠. 그것을 무너뜨려 뿌리 뽑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승리와 축복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주일예배를 잘 지킨다고 해서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율법대로 행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일까요? 이런 일들은 수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행해 왔던 일들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의 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것이 그 안에 꽈리를 틀고 있었고, 그것을 버리라고 했을 때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견고한 진을 파괴할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싸움은 각자의 힘과 지혜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치유해주셔야만 합니다.
병을 고치고자 할 때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치료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치료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이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고 그분의 손길이 우리를 만져주심으로 회복되었을 때, 전인적으로 온전히 건강함을 회복하여 성령께서 온전히 거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서,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실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셨기에 법적으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할 때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뽑아내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또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레 18:27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레 18: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했던 거죠. 그리스도인들도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권리와 축복을 이미 부여받았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모든 것을 풍성하게 얻도록 말입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은혜를 우리가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와 같은 영적 권리와 축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히 서 있을 때입니다. 우리 삶에 아직도 불법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이 구축한 견고한 진이 자리 잡고 있다면 예수님의 권세와 보혈의 능력으로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은혜 안에서 치유 받고 치유하는 과정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옛 자아를 부인하고 믿음의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옛사람이 치유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3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하나님의 치유는 성도가 사탄에게 빼앗긴 자신의 권리와 영적 유산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삶에서 복음의 약속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됩니다. 이 과정에 부자 청년처럼 근심하여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응답하여 동참해야 합니다.
살전 5장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쫓으라고 하신 겁니다. 이것 없이 어떻게 심령으로 새롭게 될 수 있겠습니까? 심령이 상해 있으니 매번 반복되는 과정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죄로 인한 상한 감정들은 과거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에도 고통을 줍니다. 과거가 여전히 한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정상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방해하고, 미성숙함에 머물게 하며, 자기방어적이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계속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이래서는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성도의 신분은 이미 ‘새사람’이 되었지만 우리의 성품과 삶은 아직 변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과거의 구습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었어도 변화되지 않은 자아가 계속하여 지배하는 삶을 산다면, 영적인 성숙과 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성품과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롬 12:2에서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의 성숙을 위해 우리 죄로 인한 상한 감정들을 회복시켜서, 깨어지고 분리된 마음을 하나의 온전한 마음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삶의 모든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그것들은 성령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것을 방해하여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힘들게 만듭니다.
다윗이 수시로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마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분리된 마음을 하나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시 86: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말씀과 회개와 용서입니다.
첫째, 진리의 말씀은 사탄이 만들어 논 거짓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이제껏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왔던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 앞에 설 때 우리 자신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는 회개입니다. 성도는 죄를 범할 때 마귀에게 자신을 괴롭힐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그건 결국 하나님과 관계가 막히는 일입니다.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회개는 마귀에게 주었던 법적 권리를 취소하고 악한 영들에게 열린 문들을 차단하며 죄로 인해 불화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를 자복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잠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셋째, 용서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지만,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진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용서하는 것이 미워하는 대상을 위한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용서를 더더욱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용서는 그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나를 피해준 대상이 아닌 내가 고통을 겪게 되며 어둠에 갇히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화하게 됩니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런 극단의 마음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내게 피해준 상대를 심판하고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치유의 열쇠인 회개와 용서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는 회개해야 하며 타인이 내게 지은 죄는 용서해야 합니다. 내 죄를 깊이 회개할수록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성경적인 치유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치유를 통해 우리 전인적인 삶은 새롭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아가 아직 부인되지 않은 사람이거나,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영의 사람입니다. 바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의 참된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뿌리 깊었던 견고한 진이 무너질 것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치유는 우리가 자신의 옛 자아를 부인하여, 온전히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육신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의 뜻을 좇아 사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치유입니다. 성령께서 거룩하게 회복한 우리와 교통하심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새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전인격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추구했던 ‘전심’이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 마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배우고 안다 해도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함으로 머리에 지식으로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행위로만 보여주고자 하는 외식하는 자만 될 뿐입니다. 그 모습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대하며 경멸하셨습니다.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다 치유하고 회복시키어 우리의 전 영역에서 흠 없는 하나님 자녀다움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살전 5:23b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과 혼과 몸”이라고 했습니다. 각각 분리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 자체입니다. 우리의 전인적인 모습이 흠 없게 보전되어야 우리는 그 분의 강림하심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종말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거룩한 성도로 세워 주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에 이 일을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살전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 자리에 소외된 자가 아니라 기쁨의 자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선물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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