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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빌3장10-16절

by 최수근 2013. 2. 24.

2013년2월24일 주일설교문

[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빌3장10-16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여러 가지 세상적인 조건을 자랑삼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과 지위에 가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바울은 과거에 누리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겨 과감히 버렸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보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고, 오히려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루어 놓은 그 어떤 조건으로도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적인 은혜로 구원의 문에 들어섰는데, 그 다음은 어떤 일들이 우리 신앙의 프로세스에서 펼쳐져야 좋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기대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하실까요?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문을 들어선 이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서서, 마치 다 이룬 것처럼 거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1.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자

     그러나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어 작은 예수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목표점은 분명합니다. 구원받은 이후 성화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써 그 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3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안다는 것은 가장 깊은 인격적 친밀함과 연합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보다 깊은 연합을 이루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분명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겐 너무도 특별한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야말로 바울의 삶의 기초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듯이 바울은 예수님을 보다 사랑함으로 그 분을 깊이 알고자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만의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더 온전하고 개인적으로 알아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동일한 목표여야 합니다. 더욱이 이 일은 구원받은 이후 평생 계속되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갈망이 오늘 여러분 가운데 있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요함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선 그 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과 깊은 친밀함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그 분에 대한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적이고 교리적인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깊은 관계의 수준에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기 원했습니다.

  2.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과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함을 통해 그 분을 알고자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고자 합니다. 10b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 그 분과 친밀한 연합을 누리고, 그분을 아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경험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고, 그 분처럼 살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220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분을 전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지식은 세상 사람들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에 대한 지식은 얻어도 그 분이 내 안에 없는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혀 없는데 어떻게 그 분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은 바울은 자신의 부활을 확신합니다. 11절에서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김 받음의 결국은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곧 의롭다 여김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으로 부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권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적인 죽음과 앞으로 다가올 육체적인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3.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이신칭의의 목표점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의롭다 여김 받은 삶의 목표점인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이르려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여전히 달려가고 있음을 오늘 본문 12절 이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하였습니다. 바울은 한 때 자신이 도달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빌립보서 36절에서 바울은 과거에 자신을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심한 이후로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은 이미 얻었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신앙을 자기완성이나 자기 의로 이해하는 완전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자신도 아직 온전히 영적인 성숙을 이루었다고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13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온전함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의 바탕 위에 과거 한 동안 율법 안에서 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자신의 업적들을 그는 다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붙잡고자 달려갔습니다. 그는 과거의 업적이나 도달한 종교적 상태를 자랑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지나간 것으로 만족하거나 거기에 안주 할 수 없었고, 앞으로 해야 할 복음의 사업, 계속해서 성장해야 할 자신의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미래에 주실 축복을 내다보지 못하고 과거를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졌습니다. 결국 과거에 붙잡혀 그들은 앞으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빠지는 오류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뒤의 것을 보는 동시에 앞의 것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으로 붙잡아야 할 것들을 보고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선 바울처럼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오직 뒤에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전에 무얼 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한 가지 추구한 것, 과거에 체험한 것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정체의 늪에 빠져들고 맙니다. 하지만 전진하는 비결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의 과거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미래의 장벽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에 얽매여 있어, 이 길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절한 영적 행위를 회피하는 데 핑계거리로 사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상황에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께 헌신하고 집중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늘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일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4.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이처럼 과거의 모든 자격과 업적과 자신의 허물과 함께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고, 오직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달려갔습니다. 바울 앞에 무엇이 놓여 있었습니까? 바울 앞에 언제나 푯대가 있었고, 그 푯대를 향하여 그는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어느 때나 방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과거의 승리 위에 서 있기를 과감히 거절하고, 오직 다가 올 영광을 열렬히 고대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마치 달리기에서 결승선을 향해 힘껏 달려가는 선수처럼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뛰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의 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와의 더 완전한 연합, 그 분을 완전히 얻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상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분으로 채워지는 인생은 이 세상 보화로 채워진 인생보다도 더욱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귀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백화점 명품세일에서 어떻게든 명품가방하나 건지겠다고 달려드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푯대입니까? 무엇이 오늘 신앙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21-2절에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말씀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얻기 위해, 그 분에게 붙잡힌바 되기 위해 믿음의 경주를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숙한 성도들을 향해 이와 같은 믿음의 경주를 강력하게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택한 받은 성도라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15a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믿음이 성숙한 자들은 복음을 왜곡하는 다른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부화뇌동하지 않고, 바울처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꼭 그 일에 동의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도 몇몇 사람은 바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달리 생각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진리를 알려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5b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사람이 아무리 주장해도 잘 먹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실 때 그 완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견해의 차이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영적수준은 서로 다른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수준, 즉 자신이 가고 있는 상태, 달리고 있는 그 지점에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에, 그래서 그 분을 닮아가는 것에 충실히 행해야만 합니다. 16절에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직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 안에 유대적인 율법주의로써 자기완성, 인간의 의를 조장하는 거짓 교사의 잘못된 교훈을 물리치고, 바울이 전한 복음대로 각자가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든지 간에 같은 법칙으로 행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이 법칙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추구해서, 그리스도 한 분만을 얻기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길을 자기가 좀 어리다고 해서 적당히 가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가 많이 자랐다고 해서 자기 생각대로 가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한분을 얻기 위하여 달리는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원칙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은 결국 말씀입니다. 우리가 함께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기초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 둘째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주신 말씀을 토대로 우리 믿음의 경주의 속도를 꾸준히 올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더욱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 분을 얻는 일에 열매가 있는 사순절 절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시간 신앙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거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성장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수행하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영적으로 정체된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바울을 본받고, 디모데를 본받고, 에바브로디도를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자기만족에 빠져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바울 당시에는 율법주의에 빠진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자기의 의를 이루고, 그 속에서 만족해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있습니다. 그들을 삼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주변을 정리하고 오직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실히 달려가노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얻고 기뻐하는 결승선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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