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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 히11장1-7절

by 최수근 2013. 8. 12.

2013년8월11일 주일설교문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 히11장1-7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명예의 전당 vs 믿음의 전당

인류의 역사에서 성경에 나온 인물들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볼 때 성경의 인물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볼 때는 위대해 보여도, 세상의 패러다임으로 잣대를 대어보면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겨 사람들의 지속적인 존경을 받아온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명예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성공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은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전당은, 세상적인 가치 기준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하나님의 칭찬과 사랑, 인정을 받은 이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그 점에서 히브리서 11장은 명예의 전당에 모셔져야 할 위대한 인물들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았기에 믿음의 전당에 모셔져야 할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2절에서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세상도 눈길조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11장에서 보게 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남달랐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11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주는 에너지와 물질의 혼합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탄생조차도 빅뱅이라는 우연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우연히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비밀스런 경륜에 의해 움직여지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 물리학자인 선배님이 계십니다. 현재 물리학부 교수로 서울대에서 재직 중이신데 후배인 저희들을 만나면 종종 간증하기를 소립자, 미립자 작은 입자로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그 신묘막측함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친히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의 존재 가운데 계신데 어떻게 마음대로 살아가겠습니까?

11장에서 나열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니 주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삶, 다른 생각, 다른 언어로 살아갈 수 있었고, 종말에는 믿음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벨의 믿음: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다

그 중에 첫 번째 인물은 아벨입니다. 창세기41-16에서 아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히브리서 11장에서 왜 그를 믿음의 거장들의 목록에 올렸는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는 그가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이었다는 점과 목동이었다는 점, 양을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는 점, 그리고 그의 형 가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빈약한 정보만으로 아벨에게서 믿음의 덕목들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11장에선 오직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벨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를 기뻐하셨다는 말이고, 그 제사의 기초가 되는 믿음을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선 아벨의 제사만을 기뻐하셨습니까? 가인도 정성껏 땅의 소산을 제물삼아 하나님께 드렸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피의 제사, 즉 희생제사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22절에서 하나님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두 형제에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제물을 기대하시는지를 알려주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피의 제사였습니다. 이미 이들의 부모였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은 무죄한 짐승, 흠 없는 대속물을 죽임으로써 그들의 죄를 처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에게 나아갈 방법을 계시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죄인에게 어떤 제물을 가져와야만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구에 아벨은 순종했으나,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인은 보다 쉬운 방법을 택했고 그의 밭에서 나온 식물을 가져왔습니다. 분명 이 과정에서 가인은 진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진지함이 순종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 다음,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방법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인의 문제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조건을 자기가 결정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나의 진지함, 나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공적, 우리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즉 피의 증거에 대한 믿음, 죄 사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그에 적합한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피가 없고, 그리스도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하게 드려지는 예배라고 해도 결코 하나님은 그 예배를 흠향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순종하였기에 그것이 한 번의 사건이었지만 그는 살아서보다 오히려 죽어서 이 땅에 오고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표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벨은 우리 믿음의 여정에서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순종하고 나아가야 함을 분명하게 메시지로 보여줍니다 

에녹의 믿음: 하나님과 동행하다

11장에 두 번째 인물인 에녹은 구약성경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아니한 두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위대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30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524절에서 말씀하기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얼마나 에녹이 하나님 마음에 사랑스러웠으면 그로 하여금 죽음의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셨겠습니까? 참으로 특별한 사랑을 받은 에녹입니다.

물론 에녹도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그 이후에서야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가 한 생명을 잉태하면서 그의 삶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단순히 길을 같이 갔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동행이었습니다. 그 길을 내가 주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도해 가시도록 순종하며 의지하며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이런 일들로 인해 불화가 생기고 이혼하게 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에서도 주님과 동행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자기고집, 자기주장대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 길을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행이 되도록 자기부인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믿음은 절대적인 요구사항입니다 

노아의 믿음 : 경외함으로 순종하다

세 번째 인물은 노아입니다. 그가 살던 세상은 악의 홍수 속에 있었던 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그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세상이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계획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심각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120년 이라는 긴 시간적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노아가 다가올 심판에 대해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물 없는 육지에 거대한 배를 만든다는 것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노아는 심히 고립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간에 쌓아왔던 자신의 명성과 공적인 위치를 기꺼이 희생하였습니다. 그렇게 노아는 대다수 사람들의 상식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집은 유일하게 거대한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면 믿음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세상의 상식이 아닌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별종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무 멀리가지 말고 경계선 신자로 살 것을 주문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하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계략에 속아 적당히 타협하고 우리의 믿음의 선을 허물어 버립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더 이상 우리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요청하신다면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주실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하나님의 기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경외함으로써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세상이 볼 때 이들은 별종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오직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셨고 그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우리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지 깨닫도록 요청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믿음의 삶을 결단할 때, 우리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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