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 마 15장 1-20]
하나님이 기뻐하고 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인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미가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결코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닙니다.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면서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 자체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합당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친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가장 경건한 체하면서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겁니다. 이들의 실상을 아는 예수님께서 그런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우선 이루어가고자 하는 예배자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신들이 세워놓은 원칙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적 만족을 추구해갔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는 먼 예배자의 모습을 지적하셨습니다. 이건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매를 맞은 격입니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나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마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범주 안에 많은 의식법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의식이 있었던 겁니다. 육체적인 정결은 고대 세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덥고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건강과 정결을 위해서 자주 씻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손은 정결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불결한 것들이 자신과 남에게 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코로나 기간에 자주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상적인 규례로 성경에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 봉사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출 30:18-21).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손을 씻었던 것을 일반화시켜 보통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까지 적용을 시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목적하에 추가 사항들을 계속 개발해서 늘려왔던 겁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람들의 경건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눅 11: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정결 전통에 관한 질문에 전형적인 랍비 스타일로 반대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 15: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헌신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유를 되물으심으로써 제자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반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어긴 계명이 무엇인지 한 가지 예를 드셨습니다. 그건 5계명과 관련된 것입니다.
마 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계명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정도로 5계명은 엄격한 것이지만 이들은 이것을 그들의 전통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이건 형식화되고 교조주의화 된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고르반(korban)이라는 자기들의 법을 가지고 5계명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마 15:5-6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고르반은 재산과 재물을 성전에 바치기로 한 맹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맹세는 너무나 신성해서 늙으신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라 해도 철회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려움 중에 있는 부모를 돕기 위해서 이 맹세를 깨고 성전에 드리기로 한 재물을 사용한 사람들을 심각한 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고르반은 제5계명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무효화 한 경건한 사기입니다. 과연 부모님을 경시하고 고르반의 전통 때문에 그것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이건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전통을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전승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잘못된 동기를 정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마 15: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사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 또한 이런 실수를 범하였고, 그런 그들의 외식함을 이사야는 신랄하게 정죄했습니다. 마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주전 8세기의 시대를 향한 정죄가 아닙니다. 시대 불문하고 이 땅에서 외적으로만 종교의식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오직 예배가 그들이 세워놓은 규례에 따라 정확하게 드려질 때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들의 주된 동기는 예식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내적 인격으로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전통과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예배가 갖고 있어야 할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거부하신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진정 향해 있지 않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8-9절). 반면에 예수님께 예배는 그분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사랑의 순종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의 특징이었던 예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드려지는 퍼포먼스로 전락 될 뿐입니다. 예배는 잘 짜여진 우리들의 쇼가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광휘 안에 머무는 것인데, 그분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같은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왜냐하면 외적 의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서입니다. 물론 외적 의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고,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하다면 아무리 겉으로 경건함을 세운다고 해도 그건 진정한 경건은 아닌 것이지요.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이 진정 사람들을 더럽히는 것인지를 말씀해주심으로 내적 정결의 중요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마 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손을 씻는 행위를 강조한 바리새인들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들을 더럽힌다는 견해를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라고 하셨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입니다. 의식적인 정결법이 경건을 낳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유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백성에게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규례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규례들은 열정적으로 지켰지만, 선지자들이 항상 외쳤던 정의와 자비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 같은 위대한 명령들은 부차적이고 선택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그로 인해 유대교는 거의 하나님의 인정을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행위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위선적인 행동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기보다는 종교적인 평판을 얻는데 몰두했던 마음을 위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예수님이 강력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정결함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은 단지 손을 씻지 않은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더러움은 단지 외적인 것으로 기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진정 더럽히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 이런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겁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다고 해서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마 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의 해결방안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겁니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였습니다. 이 땅의 어떠한 것으로도 그것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거룩한 척하는 행위로 내면을 거룩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이것을 치유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입니다. 그분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구원을 얻어 성령님의 인치심을 통해 내면이 변화되고, 그와 같은 거룩한 마음에서 시작하여 안에서 바깥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적에서 외적으로, 거룩한 변화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요구 앞에 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규칙으로 결코 무력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 중심의 예배와 삶,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내적 정결함을 이루고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모든 예배하는 자들에게 찾고 계신 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고집스럽게 주장해왔던 외적 정확성이 아닙니다. 바로 내적 정결입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 인간들이 세워놓은 의식적인 종교 행위를 그치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주의에게, 둘째는 바리새 교리에 집착하는 유대 기독교에게,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죽은 의식만 존재하는 이방인 교회들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형태의 율법주의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살아있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자신들의 전승에 사로잡혀 성경과의 충돌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반하여 마음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단호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실제적 영역에 대한 진리의 최종적 진술입니다. 종교적, 사회적, 관계적, 윤리적, 정치적, 그 어느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결정권을 갖습니다. 모든 인간의 전승, 가르침, 해석, 추론 등은 하나님의 쓰여진 말씀 앞에 부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영적 경험을 통해 발견하려고 합니다. 성경이 그들에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자주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 또는 경험이 최종적인 판단을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다른 전통이나 권위가 대체할 수 없고,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진행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얻고 순종하는 삶의 습관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서 참으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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