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주일예배
[하늘 가족의 조건: 마 12장 46-50절]
한국 사회도 점점 더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1인 가구로 사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혼과 재혼도 많아져서 가족이었던 사람이 더 이상 가족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전혀 상관없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가족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 가족이 영원한 가족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가족의 모습, 정의, 규범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족은 서로 돌보는 사람들이고, 돌봄은 가족의 존재 의미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돌봄의 수고 없이 가족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돌봄의 부재로 가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0%가 부모이고, 노인학대 가해자의 70%가 자녀와 배우자라는 통계를 보면 가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가족이 원수인 겁니다.
가족이 서로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수고를 감내하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면 불행한 거죠. 행복한 가족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가족이 그 존재 의미를 행복하게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하나 된 모습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요? 각자의 마음이 나누어져 있다면 그래서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맨 처음으로 서로 돕고 돌아보도록 만드신 공동체가 가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혈연관계로서의 가족공동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한 형제, 자매가 되는 새로운 가족입니다. 혈연적 가족과는 다르지만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혈연적 가족 같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로 말입니다. 하지만 마 12:30a에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의 뜻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믿음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다음 단락에서 중요한 의미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족은 어떤 자인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자여야 하지, 분리되어 바깥에 있는 자는 가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예수님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협력이 아니라 그 길을 막고 비난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부분에서도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있던 자리에 있지 않고, 밖에 서 있던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 12장 46절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상황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족들이 끊임없이 그분을 오해하고 반대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에서 형제들이 그분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마가복음 3장 21절은 어조가 훨씬 더 강합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면, 무리 가운데 있지 않고, 바깥에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았던 가족의 모습은 지금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족들이 바깥에 와서 예수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를 상상할 수 있어요. 결코 좋은 소리는 아닐 겁니다.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힘들어졌어, 제발 그만 해라...”
예수님의 가족을 아는 한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선 것을 보고 예수님께 가족이 왔다고 전하였습니다.
47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이때 예수님께서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셨습니다.
48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예수님의 수사학적 의문문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 밖에 혈연관계로서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서 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이 혈연관계를 부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주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결코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신 겁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새로운 하늘 가족공동체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혈연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매우 파격적으로 새로운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의 도래를 선포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십니다. 마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못내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의 모친과 동생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이라고 하심으로 영혼의 거듭남으로 이뤄지는 영적, 신앙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영적 가족의 중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와 함께 예수님은 우리도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되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를 확인해주셨습니다.
확실한 가족의 증거를 밝히신 겁니다.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가족으로 받아주시겠다는 선포입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셨습니다.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합니다. 그게 가족의 증거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렇게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뭘 기뻐하실까요? 평행본문인 누가복음에서도 가족은 어떤 자인지를 명료하게 이야기합니다.
눅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권속으로 삼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족의 연합체로서 자리매김하려고 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서로를 돌아보며 그 마음을 하나로 묶어 갈 수 있어야 진짜 가족인 거죠.
바로 주님 뒤를 따르는 제자들만이 주님의 가족으로 영광스러운 지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때 제자들을 향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있다면 우리를 가족이라고 칭하여 주시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족들의 상황도 이렇게 잘못된 채로 끝까지 가지 않습니다. 실은 사도행전의 시작과 함께 놀랍게 바뀝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제자들과 함께 다락 방에 모여 성령의 은사를 기다리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 이상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 형제 중 한 사람인 야고보는 주님의 부활을 보고 명백히 회심했습니다.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주후 62년에 그가 죽은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권은 다른 형제인 시므온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렇게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좋아지게 되지만,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에는 혈육보다 제자들이 더 가까웠습니다. 이처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국 밖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에게 끊임없이 깊은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족이 문밖에 있던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은 누가 그분의 참된 가족인지 가르치시며, 마태는 이것으로 예수님에 대해 결단하는 일의 중요성을 절정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이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 혈통적으로는 메시아와 연관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지 않는 것처럼 종교적 행위와 종교적 혈통은 어느 쪽이든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주는 조건은 아닙니다. 그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는 것과 그분을 따르려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은 우리를 바깥에 머물러 있던 자리에서 더 가까운 가장 긴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 겁니다. 그 자리가 바로 진정한 가족의 자리입니다.
하늘 가족은 이 땅의 일에 묶여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믿음의 가족입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 안에 서 있어야지 그 밖에 서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늘 동행하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으는 자여야 합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우리 예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진정한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목하실 겁니다. 우리 여정 가운데 동행하사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겁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이기에 우리를 평안하게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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