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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첫번째 만남이야기: 요 20장 19-23절

by 최수근 2023. 4. 25.

2023년 4월 9일 주일예배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첫번째 만남이야기: 요 20장 19-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날 기독교가 맞이하는 부활절은 축제의 날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처음 맞이한 주님의 제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건 예수님의 부활이 인간의 이해력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역사 속에서 일어났지만 동시에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렇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 앞에서 제자들은 몇 사람의 증언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모여 두려워하며 걱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과 3년 내내 함께했었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처럼 우왕좌왕했으니 다른 이들은 오죽하였겠습니까? 그 당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환호와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을 믿고 부활 신앙을 소유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아갔다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던 여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을 때 그 입구를 막고 있던 큰 돌이 옆으로 굴려져 있고, 시신은 사라지고, 대신 천사가 무덤에 있는 것을 보았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렇게 두려워 떠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놀라운 말을 전했습니다. 16: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여인들은 죽은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이지 산 예수를 찾고 있지 않았던 거예요. 여기서 초점을 바꾸지 않는 한 살아계신 예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지극히 정상적이라면 그 즉시 제자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몹시 놀라 그 자리를 뛰쳐나와 도망쳤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부활을 믿고 기대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여인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한 것은 이해가 가는 행동입니다. 초월적인 이 사건을 어떻게 여인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도망가듯 여인들이 떠나고 막달라 마리아가 홀로 남아 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친히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처음에는 그녀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친밀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마리아는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부활의 소식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달려와 당장 알렸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까지 달려갔다고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서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아예 믿지 않았습니다.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여있던 제자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들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 계셨던 겁니다. 분명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인기척도 없이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서 계시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난 3일간 제자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자 그들은 도망쳤고, 부인했습니다. 3년간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만해도 이런 비극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그들을 짓눌렀습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두렵고 놀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샬롬, 즉 평강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진정 우리 안에 샬롬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 샬롬은 하나님 나라의 선물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샬롬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그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리스도를 떠나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질서 안에 거할 때,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진정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샬롬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기로부터 우리는 마음에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오셔서 샬롬의 인사를 나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상흔을 보여주셨습니다. 20a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만나고 있는 분이 유령이나 환영이 아니라 정말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자 하신 겁니다. 먼저 손을 보여주셨습니다. 손에는 못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옷을 들어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드러난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행동을 보이신 것은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 이 장면에서 주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상흔을 보여주시는 퍼포먼스를 하자 그제야 제자들은 죽음을 뚫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기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들을 만나주셨을 때 두 가지의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제자들에게 두려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기쁨을 회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지난 며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우울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울함과 슬픔 가득한 그들에게 평강과 함께 기쁨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이것은 극심한 두려움과 슬픔 중에 있던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선물이 아닙니다. 오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래서 예수님 앞에 서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넘쳐, 세상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며, 그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도 주시고 기쁨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궁극적 목적은 아닙니다. 사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은 파송과 연결됩니다. 요한복음 2021절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제자들의 신앙과 헌신과 소망을 새롭게 하셨고, 제자로서의 사명을 각성시켜주셨습니다. 만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사명과 임무를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앞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계속 수행하기를 기대하시는 겁니다.

그건 두 가지 기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그가 행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를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권세,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시켜 주셨습니다. 20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파송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실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 우리의 열심만으로는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삶을 살고자 하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영적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의 죄 사면권에 대한 언급이 아닙니다. 복음 증거에 있어 제자들의 막중한 책임감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 할 때 복음을 듣는 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의 열매를 맺으면 결과적으로 죄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짐을 말씀한 겁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이처럼 부활 이후 찾아온 주님의 행적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샬롬이 되었습니다.

슬픔과 우울함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도피자가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시다. 주님과 동행합시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평안과 기쁨입니다.

성령과 증인의 권세, 권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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