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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2장4-10절

by 최수근 2013. 12. 22.

2013년12월22일 주일설교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24-1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공의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쓴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책이 있습니다. 용서 없이 왜 미래가 없을까요? 용서가 없다면 그곳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는 일은 여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시 마음에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올해가 다가기전에 참으로 용서할 수 있기 바랍니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태복음 193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반면에 내가 용서하면 하나님 앞에 내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612절에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기도가 뭡니까? 이겁니다. “하나님! 지난번 나를 힘들게 했던 저 인간도 용서했거든요, 하나님 그런 저를 좀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시면 안되시겠어요?”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용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큰 사랑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용서하라 꾸준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3장에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이후 인간들은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파열되어 멈추어 설 수 없듯이 죄와 허물 가운데 오직 죽음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정말 화가 나셔서 저러다 다 망해라, 죽어라! 이 진노의 자식들아!” 그냥 방치하셨다면 과연 인간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확고히 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그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마음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어떤 한계상황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큰 사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더군다나 인간은 타락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자마자 바로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죽어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들의 상태를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먼저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그 일은 죄로 죽은 우리를 다시금 살려내시는 역사로부터 시작합니다.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허물로 죽은 인간을, 먼저 살려놓으시는 일이 가장 시급하였기에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살려주시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순간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때 가장 우선 되어야 할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을 살려놓는 것입니다. 왜 쓰러졌냐? 원인을 찾고 하는 일은 심장박동이 0에서 정상박동으로 돌아왔을 때, 생명이 회복이 되었을 때, 비로소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시간을 놓치면 영영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해서 죽었는데, 버림받아도 아무할 말 없는데, 그런 상황을 다 무시하고, 저들을 먼저 살려놓으셔야 한다는 긍휼의 마음에서 하나님은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금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하나님에 대해 죽었기에 하나님께 나올 수 없는 인간들에게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죄의 값조차 치룰 수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로마서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욱이 이 구원은 지금 우리 안에 완성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는 경험을 말할 때나, 혹은 죄의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유로워질 때 구원하다는 말의 시제를 현재시제나 단순과거형으로 사용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이미 완전하게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단 가운데 구원을 몇 단계로 나누어 구원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었고, 어느 누구도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대단한 것은 우리를 단순히 살려만 놓는 임시적인 조치를 하나님께서 취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단지 사탄의 영역에서 구출해내는 응급조치가 아니라 본래의 하나님 창조질서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영역인 하늘 영광의 자리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셨습니다.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역으로 옮겨진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신분으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로마서517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된 우리들은 더 이상 이 땅의 권세에 예속된 자들이 아닙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높임을 받은 성도로서 우리는 이 땅의 가치와 권세 아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인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3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지금 여러분은 어떤 가치와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셨고, 하늘권세의 자리에서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를 채워드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연약한 우리 자신을 보면 정말 내가 왕 같은 제사장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또한 살려주셨기에 믿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믿어주시는데, 정작 나는 왜 나를 믿지 못합니까?

세례의 사건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일으키셨고, 하늘에 앉히신 이 구원의 사건은 특별히 로마서6장을 보면 세례사건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로마서6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절에선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과거 죄로 죽었던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은 존재로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육에 의한 삶이 아닌, 영에 의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그 주권을 드리게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써 이 땅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의의 병기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영역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세례의 의미입니다. 세례 받은 자의 삶이 여러분 안에서 회복되기 바랍니다.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 데는 매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7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높이시면서 하나님은 이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 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점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하시고 은혜로운 분이신지 증거 하는 산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나를 보면 누가 보여야 합니까? 나에게서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의 산 증거로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이들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속한 곳에서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드러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이도 구원받았는데, 너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시면서 매우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과정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됩니다.

8a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살리시기로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긍정적인 진술을 강조하기 위해 매우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8b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선물에는 주는 이의 마음이 실려 옵니다. 구원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 마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그 분의 선물을 겸손함으로 거저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9절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말씀하였습니다. 구원의 사건과 경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이지, 우리의 업적, 우리가 행한 어떤 종교적 행동이나 자선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인간의 공로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 당연히 인간의 자랑도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자랑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만들기에 하나님은 그 싹을 잘라버리셨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죄로 인해 그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죄로 인해 무력한 우리들에게 이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어떤 공헌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네가 그렇게 살면 구원 못 받지!” 이 말은 맞지 않습니다. 나의 행함이 구원에 대한 조건이 되었다면 인간에게 이것은 구원에 대해 자랑할 만한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내게서 하나님도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라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라 하였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라.” 죄와 어둠은 지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찬,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새로운 인간들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통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10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말씀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행은 9절에 나오는 인간의 행위와는 다른 말입니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구원에서 비롯된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의 새 삶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10절 말씀은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주의에 빠져 행함이라는 인간의 공덕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오직 은혜를 강조합니다. 다른 하나는 오직 은혜뿐임을 주장하면서 삶의 현장에선 결코 작은 예수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에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에 대해 우리는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전에 우리는 마귀가 우리를 빠뜨려 놓은 허물과 죄 가운데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영원토록 행하도록 계획해 놓으신 선한 일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한 새로운 창조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과거 우리들이 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진노에 매여 있었지만 그렇게 죽은 존재로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한 바를 오늘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통해, 그분에게 깊이 뿌리내리고 영적인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의 열매를 맺어,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림절 네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나심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이 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시는 놀라운 축복 안에서 우리들은 마지막 날에 이 땅에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그 복음의 소식을 아직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듣긴 들었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구원의 소식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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