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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나의 향유를 주님께 아낌없이 부어드리라: 마 26장 6-13절

by 최수근 2024. 3. 24.

2024년 2월 11일 주일예배설교

[나의 향유를 주님께 아낌없이 부어드리라: 266-1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어떤 돌발적인 상황들이 일어날 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을 해석하는 잣대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상황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해서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누군가가 상처받게 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겁니다. 그건 다른 이들을 심히 괴롭히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교회 오래 다닌 분들이 처음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 하고자 하는 경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게 옳다’ ‘그건 틀리다참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나 목적이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볼 수 없거나 인정하지 않게 되면 우리 자체가 불통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한 에피소드도 무조건 하나의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진정한 의미의 풍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방문하여 식사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한 여자가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식사의 자리에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에 사람들은 당황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녀는 그녀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예수님에게 최고의 것으로 감사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가야바와 종교 지도자들의 살해 의도, 유다의 배신 등이 이어지는 길목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게 됩니다. 주님을 대하는 방식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의 대세는 주님을 높여 드리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을 존귀하게 여겨 그분을 특별하게 대하는 행동조차도 그들에게는 읽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일을 보고 몇몇 제자들이 분노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쓸데없는 행동이었다는 겁니다.

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비싼 향유를 그냥 바닥에 허비한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향유를 바닥에 쏟아버린 것이 아닙니다. 분명 사랑하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종종 유대인들의 연회장에서 주인은 때때로 손님들의 머리에 작은 양의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것이 머리와 옷에 남아서 연회에서 좋은 냄새를 풍기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연회의 향내를 풍기기 위해서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병을 깨뜨림으로써 향유 전부를 예수님의 머리에 다 부었습니다. 자신의 이런 행동으로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감사의 풍성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참으로 아낌없이 주님을 섬긴 겁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에 대해 야박했습니다. 그분의 머리에 부어진 기름을 아까워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분개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자들의 메마른 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에게 뭔가를 얻으려고만 하였지, 주님께 무언가를 드린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은 제자들이었으니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라고 마리아를 야단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은 적절하게 몇 방울 뿌리면 되는데, 결코 그렇게 향유가 허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름 그 향유의 올바른 쓰임새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26: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향유는 적어도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일 년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봉급이 바로 눈 앞에서 날아가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요.

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그 당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난은 심각한 문제였기에 그런 큰 액수의 돈이라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인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망각하고 단지 실용적으로 생각한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에 실용적인 문제에만 제자들의 시선과 생각이 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도 있어야 했고, 이것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하는 바로 그분 생각도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일상적인 상황이 아닌 특별한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행한 일은 참으로 의로운 일이었습니다. 그걸 제자들은 볼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던 거죠. 계속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신 목적을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의 영적 무지의 결과입니다.

게다가 이 말을 한 제자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24절에 의하면 가룟 유다입니다.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것이 은 삼십을 위해 방금 주님을 팔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교활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그 어떤 진정성도 담겨 있지 않은 비방의 말임을 알 수 있는 거죠. 거짓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의 문제는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좁은 식견과 자기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구속사를 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깝기만 하겠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필요한 과정들입니다. 이것을 읽어내지 못하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속사의 길에서 비켜 가듯이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놓치실 일이 없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질문이 들어갔습니다.

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물론 주님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시기에 주님을 여인의 행동이 주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제자들의 참견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율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제자들의 의무를 경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이 항상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은 이상적인 행위의 의무임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계속해서 짊어져야 할 의무입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돕는 것은 미래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봉사는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일상적으로 그간에 행해왔던 구제의 일이 아니라 주님을 존귀히 여기고자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시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단순히 예수님께 자신의 무한한 헌신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께서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베풀어 주신 일에 대한 보답으로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여인의 실제적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녀가 행한 것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한 의미를 갖는 경의의 행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이 여인이 준비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과정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여인의 행동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으셨습니다.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의 행위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위한 올바른 선례가 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음 전파에서 이 이야기의 배후에 있는 참된 이야기는 그녀가 모든 다른 가치들보다도 예수님을 우선하여 주로 경배했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다른 이들의 행동을 재단하곤 합니다. 그것이 엄청난 실수임에도 말입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을 전혀 읽어낼 수 없는 구속사의 문맹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나의 유익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부를 쏟아부어 그분을 높여 드릴 때 우리 또한 주님으로 인해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어떠한 헌물도 낭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물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태도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그 사실을 매우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사랑의 헌신, 특히 그분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 행한 일보다도 더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진정성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향한 진정성은 그냥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닙니다. 복음의 역사가 완성되어 구원에 이르는 마지막 시간까지 주님을 위한 우리의 행동은 고귀한 일이며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낭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모범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 마리아의 헌신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귀중한 소유물인 향유병의 뚜껑을 열어 그것을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붓도록 고무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아낌없이 다 부어드리는 그래서 주님을 높여드리는 성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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