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4일
[복음이 주는 자유와 세우심: 행 26장 14-1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그 귀함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건네주면 고맙게 여기질 않습니다. 물건의 가치를 모를 때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진주의 귀함을 알 턱없는 돼지가 진주를 짓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게 되면, 그것이 귀하면 귀할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고 있는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의 가치를 아십니까?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와 그 세워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던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복음을 통해 누리게 되는 은혜가 무엇인지 함축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6장이 그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절-17절을 보면 밝은 빛 가운데 현현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함으로 하나님을 더 이상 대적하지 말라고 경고 하십니다. 이에 놀란 바울이 땅에 엎드려 자기에게 말씀하고 있는 분이 누구이신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러시면서 그를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박해자 바울을 구원하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보내시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경험 앞에서 바울은 변화되었고, 평생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그 때 다메섹 도상에서의 놀라운 경험을 떠올리며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인지, 또 복음을 주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18절에서 선포합니다. 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여러분은 단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까? 너무도 많은 이들이 구원받은 것에 머물러 살아갑니다. 구원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목적하며 이 길을 왜 가야 하는지 신앙의 로드맵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원을 통해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사모하고, 그 은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했지만 능력도 없고,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눈이 어두운 소경이었습니다. 사탄의 권세에 눌려 살았습니다. 죄 속에 묻혀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1. 그 눈을 뜨게 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18절 첫 머리에 “그 눈을 뜨게 하여” 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의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었던 것만을 바라보았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눈이 가리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위해 충성되게 살아간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소경으로 살아갈 때 이 황당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셨고, 그의 가리어졌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눈을 뜨게 되니까 비로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보였습니다. 그가 핍박하던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이 그렇게 고대하며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것을 고백을 합니다. 그가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영적인 눈을 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진리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예수님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성령께서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이 볼 수 있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전하시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앞에 서기까지 우리는 영적인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거짓된 것에 함몰되어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생명에 이르는 길인지,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 알지 못한 채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간에 가리어졌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영적 식별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삶의 가치관도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 앞에 온전하게 섰을 때 우리는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 밖에 있으면 여전히 눈뜬 소경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 끝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를 것입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이처럼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눈을 뜨게 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고 영접함으로써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우리의 영적 주소지가 변경이 된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기어졌습니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지금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구원이후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구별되고 있습니까?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신지, 아니면 그 자리를 내가 꿰차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것은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기분 나쁘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어둠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끊어내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만이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거룩한 나라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거룩한 무리
이렇게 우리의 신분과 나라가 바뀌었다면 분명 우리는 그 나라의 질서에 순복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의 질서입니다. 빌 2:12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세 단계 중생, 성화, 영화에서 성화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습니다. 죄인된 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가능성도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함을 입었고,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죄 없다 하셨습니다. 죄 사함의 확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육체의 연약함으로 죄에 넘어질 때마다 사탄은 그런 우리를 정죄하고 넘어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 흘림으로써 죄 사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사망의 권세와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방종주의로 빠지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에 죄와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눈이 어두워, 어둠 가운데서 불신의 삶을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눈을 뜨게 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거룩한 백성으로 전환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들이 추구하고, 목표하고, 꿈꾸는 일 또한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백성의 삶입니다. 모든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거룩한 변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구약적인 개념에서 거룩은 법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약적인 개념에서의 거룩은 나를 하나님께로 결단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존재로 변화될 때 거룩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2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화의 과정을 참으로 성실하게 밟아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 끝에 섰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영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길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나 구원받은 사람이야!” 이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우리 자신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진정 나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불의의 병기가 아닌 의의 병기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4. 기업을 얻게 하리라. 기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 누리는 은혜의 정점이 단지 중생과 죄 사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큰 그림을 갖고 계신데, 우리는 구원의 문 입구에서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구약 백성들은 광야 40년의 유랑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불신했던 60여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기업을 얻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약백성들 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뿐만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은 이곳에서 왕권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본래 창조 때에 사람들에게 주신 왕권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행자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얼굴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복음이 주는 자유와 세워주심은 매우 놀랍습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풍성한 약속들을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십시오.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영적으로 치열하게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하고, 죄의 권세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적 싸움은 고독한 우리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이기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으로 우리의 구속사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보임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우리는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사도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흘러가고, 나로 인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가 자라나 그가 복음을 전하고, 거기에서 복음이 흘러 그 다음 사람, 즉 4세대까지 흘러가는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삶을 완성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복음의 삶에 충실 합시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갑시다.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업으로 택함 받은 자녀들입니다. 우리를 아들딸로 택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찬송으로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그 삶을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게 이루어갈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부끄럽지 않은 성전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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