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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선교적 삶을 위한 전략: 마 10장 11-23절

by 최수근 2023. 1. 17.

2023년 1월 15일 주일예배

[선교적 삶을 위한 전략: 마 10장 11-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적 삶의 초대에 응답하고, 자기를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눔으로 선교적 삶을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간의 마음은 나누기보다는 자기 유익으로 채워지기를 기본적으로 욕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에서도 보았듯이 남이 가지고 있는 값진 것에 대한 욕심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런 불같은 마음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영문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819~20절의 대 지상명령을 통해 목표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는 삶을 사는 데 있다고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제자들에게는 목표가 너무도 높고 먼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의 선교적 삶으로의 부르심 앞에 섭니다. 그래서 처음엔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합니다. 그러나 몇 번 거센 거절을 당하면 그 힘이 꺾이기 쉽습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신앙 생활할 필요가 있겠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자기 열정만으로 나갔다가는 금방 식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교적 삶을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처하게 될 상황들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래서 선교적 삶으로 나아가는데 부딪치게 될 모든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맞서야 할지를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후에 초대교회의 선교상황에서 이와 같은 이들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나아가는 세상이 어떠한지를 규정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맞닥뜨린 세상을 향해 무엇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양이 이리 떼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순간 잡아먹히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을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세상은 결코 제자들을 환대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요? 소위 그럴싸한 전략 같은 거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덕목은 두 가지입니다. 지혜와 순결입니다.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와 순결에만 초점을 맞추시면 되는데 이 두 가지가 왜 필요할까요?

우리가 귀한 것을 나눈다고 해서 사람들이 열렬하게 환호할까요? 귀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이에게 나아가야 할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11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사람들이 모두 냉담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환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합당한 자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확장하면서 곳곳에 제자들이 갔을 때 준비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전도 여행할 때 만나게 하신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 같은 경우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그 지역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루디아 같은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영접하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지로 보내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세상은 이리 떼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선교적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두 가지 행동양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지혜와 순결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무지의 소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하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과 진실, 이에 반하는 거짓과 악을 구별하기 위해선 영적 분별이 우리에게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합당한 자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순결함입니다. 세상은 죄로 너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혼탁한 틈에서 순결함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로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함을 힘입어야만 순결과 거룩함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선교적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연합이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거룩함을 덧입을 수 있고 그분의 능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대와 거절의 차원은 가장 작은 관문이고, 선교적 삶을 살고자 세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심각한 갈등과 반대, 나아가 박해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17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이런 상황들은 예수님 승천 이후에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가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는 시점으로부터 정확하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을 좇아 대지상명령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럴 때 바울처럼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파하였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은 예견하셨습니다. 18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선교적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 앞에 서서 증인이 되는 삶입니다. 증인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뭔가를 본 사람입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본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본 복음을 증거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증거 한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잘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19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반대의 함성을 뚫고 우리 안에 있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면 담대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거기에 주눅들면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습니다. 그 거센 압력을 이겨낼 힘이 없어서입니다. 세상의 거센 압박을 견디어내게 하는 힘은 우리 내부로부터 나오는 힘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힘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주신 성령의 권능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증거의 자리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무리 말을 잘 전달하여도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환영받지 못합니다. 환영받지 못함으로 넘어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어려움 앞에 서서 우리는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22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견디는 자라고 했습니다. 끝까지라는 시점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개인의 종말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그와 같은 다이내믹한 선교적 삶을 버티고 나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인정받는 자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종말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해주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오고 오는 모든 믿음의 세대는 선교적 삶의 실천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복음 앞에 온전히 서서 복음으로 인한 삶의 변화와 성숙을 가져간다면 우리는 분명 세상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이들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외치신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잘못했다라고, “회개하라라고 외칠 때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겸허한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편한 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신 것처럼 여기는 맹수가 득실거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편안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주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려면 지혜와 순결이 필수요소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온전히 그리스도로 덧입혀지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외의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이렇게 지혜롭고 순결한 자녀로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 서야 합니다. 죄로 얼룩져 혼탁해진 세상 가운데서 빛나는 자가 되려고 하면 말입니다.

짙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합니다. 영적 긴장을 늦추는 순간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사탄의 무리는 득달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헛된 자리, 허망한 자리에 서 있어서 나의 작은 욕심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정말 잘못 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점검을 소홀히 할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이웃의 마음을 볼 수 있을 때 진정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삶을 위한 헌신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이어지는 선교적 삶의 여정에서 참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다시금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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