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9일 주일설교문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 민 9장 15-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이성과 판단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멘토의 영향력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되는 대로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인데, 자신이 주인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삶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답게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자기를 인도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과연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금 인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신앙의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 하에 이집트를 떠나 척박한 광야를 지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200만 명 되는, 그것도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과연 모세 혼자 이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하지만 그 길은 모세가 인도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는 광야의 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백성들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장치를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이끄셨던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까지 전진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십계명과 함께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진중에 성막을 세우도록 명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예배의 질서를 세워주셨습니다.
그 끝에 출애굽기 40장 34절 이하에 보면 마침내 성막이 하나님께 봉헌된 후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막에 가득하게 됩니다.
임재의 상징
오늘 본문인 민수기 9장 15절에서도 출애굽기 40장 34절 이하를 다시 설명합니다. 성막이 세워지던 날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는 것입니다.
15절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또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광야생활에서 내내 반복되었습니다. 16절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광야 생활동안 구름과 불로 하나님의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름이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밤에는 차가운 공기 중에 불로 따뜻하게 우리를 비추어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구름과 불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들의 삶에서 보인다면 참으로 든든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심이 보이고 믿어지는데 어떻게 딴 길로 가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구름의 인도
민수기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머물며 가나안을 향한 모든 준비를 하고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킨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 해 가는데, 그 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에 이스라엘 자손은 행진을 해야 했습니다. 성막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켰던 구름은 그 점에서 그들의 안내자였습니다. 이렇게 성막 공동체의 행진은 하나님이 이끄셨습니다. 단지 그 표상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으로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진영의 한 가운데 성막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성막의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성막위에 구름이 머무는 동안 백성들은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짐을 챙겨 행진해야 했습니다. 17절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행진은 구름이 성막을 덮고 있을 때(15-16절)와 구름이 성막 위로 걷혀 올라가 있을 때로 나눠집니다(17-23절). 구름이 오르고 내리는 움직임에 따라서(17-18절), 이스라엘 진영의 ‘장막치기’와 ‘장막 거두고 행진하기’가 되풀이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의 인도는 단순한 사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머물게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낮에는 구름의 움직임을 통해, 밤에는 불의 움직임을 따라 그들에게 명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 그 명령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18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본문은 세 가지 행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 길을 떠났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날 동안에는 진에 머물렀습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구름과 불의 움직임을 보며 그들이 떠나야 할 것과 유진할 것을 분별하였습니다. 주변 여건에 따라, 특정한 어떤 상황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이렇게 성막에 덮인 구름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이스라엘 진의 이동원칙이었습니다. 구름이 머무르면 같이 진이 머물고, 구름이 움직이면 진이 진행을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의 행진은 이처럼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름과 불의 현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규칙적이지 못하고 불규칙적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오랜 동안 성막 위에 구름이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19절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구름이 오래 머무는 경우, 그렇다고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지체될 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빨리 들어가기를 원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조급함과 인내심과 싸워야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구름의 움직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전적인 신뢰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뭔가 정체 된 듯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인도하시지 않을 때조차도, 뭔가 시간이 늘어지고 점점 더 답답해지기 시작할 때조차도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머물러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어있는 그러한 때조차도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는 진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며칠 머물다 떠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한 번 200만 명이 진을 치고, 진을 거두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머물거나 행진을 했습니다.
20절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헌데 문제는 세 번째 상황입니다. 저녁에 구름이 머물러 행진을 멈추고 진을 치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까 아침에 구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구름이 밤낮 있다가 밤에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21절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한번 천막을 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요즘 휙 던져놓으면 펴지는 그런 텐트를 갖고 하는 거라면 쉽겠죠. 하지만 그런 텐트가 아닙니다. 일일이 말뚝을 박아야 하고 기둥을 세우고 줄을 메고, 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아십니까? 게다가 성막을 다시 풀었다가 다시 하루도 넘기지 않고 주섬주섬 싸려고 하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더욱이 잠을 잘 시간에 온 가족들과 짐승들을 데리고 이동한다는 것은 심히 위험한 전진이었습니다.
그렇게 결코 쉽지 않은 다양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오직 구름과 불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대로 머물고, 행진하였습니다. 그렇게 불평, 불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점에서는 순종했습니다.
22절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떠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야영하고, 함께 행진하는 일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정에서 참으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온전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나아가는 거룩한 여정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하였습니다.
23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오늘 본문에서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라는 말이 8번이나 나옵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 내 생각, 내 판단, 내 경험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 앞에 구름이 있는가?
이렇게 민수기 9장 15-23절은 거룩한 행진에 관한 지침으로 이스라엘의 광야 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가르쳐줍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구름과 불기둥이 오늘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며 믿음의 전진을 이루어 가고 있는 여러분들을 덮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따랐던 구름 기둥, 불기둥이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구름으로 자신의 임재를 보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가셨습니다. 물론 구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과 함께 계심을 입증해 주는 가시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며 우리를 덮는 역할은 그 때와 같은 구름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 안에서 살아갈 때, 성령님은 오늘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내 경험, 내 지식, 내 이성, 내 판단에 의지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성령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성령님께서 서라 하시면 서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성령님의 소리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상식적으로 말씀하실 때는 대게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어젯밤 텐트를 쳤는데 오늘 아침 다시 거두고 떠나라고 한다면, 갑자기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밤에 떠나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씀하심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판단의 지배를 받는 경우들이 왕왕 있습니다. 그 일이 볼 때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조차도 우리는 자기 기질, 자기 경험과 이성, 판단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좇아 섬겨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을 통해 드러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랐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이신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써 우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를 통해 함께 하십니까?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잃게 하는 무서운 적입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지만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는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하심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들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까지 미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의 여정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인은 시 119:105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 됨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구름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움직임, 그리고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이성적인 설명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믿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보폭과 걸음새, 걷는 속도와 걷는 방향 등을 정해 주시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 될 수 있고, 희망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즐거워하며 귀를 기울이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데로 듣고 순종함으로 따라야 합니다. 신앙은 여행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나서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의 성공과 실패는 ‘어디까지 가나’에 있지 않습니다. 이 여행의 성공과 실패는 순간순간을 어떻게 가나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인생여행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각보다 앞서 가시도록 행한다면,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간다면 그 길을 가는 내내 하나님의 복 주심을 경험하면서 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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