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5일 주일예배
제목: 하나님 편에 서 있습니까?
본문: 민수기 25장 1-13절
설교: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브돌의 복술가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요청에 따라 무려 4차에 걸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압 왕 발락이 많은 돈을 주고 사주한 발람을 통해 저주하려던 이 음모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권적으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가 아닌 축복이 선포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발람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직접 경험했기에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해 대적하지 말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의 저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던 일이 무산되자 이스라엘이 결국 저주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가증스러운 한 꾀를 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성적으로 타락시키는 동시에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도록 한 것입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인계를 써서 이방여인들과 어우러지게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삼아 우상까지 섬기도록 만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받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 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거짓 선지자 발람의 죄를 우리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발람은 거듭거듭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발람은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파렴치한 계획을 실행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그 뜻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다면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이방 선지자 발람처럼 행동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발람은 죄 값을 치루고 결국 심판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며 거짓 선지자 발람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늘의 은사를 가졌어도 우리 내면의 탐욕이 영적인 눈을 멀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탐욕을 위해 끝까지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고,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이 중요합니다. 예언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잘 믿노라 하면서도 발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늘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방 선지자 발람은 그렇다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은 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이미 시내산에서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발람의 저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이셨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유랑을 마감하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들어가야 하는 출애굽 2세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훈련과 경험에 근거해서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이 그들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먼저 육체의 정욕으로 공격해오는 사탄의 계략에 즉각적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1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육체적인 쾌락을 만족하기 위해 시작된 이스라엘의 죄는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2절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지혜롭고 위대한 왕 솔로몬도 말년에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다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결국 나라가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고도의 전략입니다.
그 당시 바알 신은 농경신이기에 바알을 섬기는 제전에는 다산을 기원하는 성행위가 있었습니다. 미디안과 모압은 연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하려는 발람의 음모대로 여인들을 통해 그 음란함의 자리와 우상숭배의 자리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유혹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한번쯤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들의 타락한 문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의 1차 저지선이 허물어지면 2차 저지선은 맥없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사탄은 이것쯤이야 괜찮아 하면서 다가와 우리로 하여금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계속 뒤로 물러서다보면 죄의 길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엡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의 간계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 상황을 3절에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전 개역한글 판에서는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고 했습니다.
한번 절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바알에게 절하고 그를 숭배하게 되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다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하고 우상숭배를 조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이 일에 동참한 것이 아닌데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담한 것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죄의 영향력은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을 바알에게 헌신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면서 여호와의 군대라 하셨고, 나의 장자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헌신하기를 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오히려 바알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세속적 문화를 거절하지 못하고 이방 문화를 그리워하던 이스라엘은 결국 그들이 사모하는 문화와 종교의식으로 빠져들어 갔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속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편이 아닌 우상의 편에 자기도 모르게 서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인지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를 말입니다.
발람을 통해 저주가 아닌 축복이 선포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바알브올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스라엘로 하여금 진노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부추기거나 주동자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가는 길을 막았던 자들에게까지도 진노하셨고, 그들에게도 엄하게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의 생애 중에 미디안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갚으라고 하셨고, 결국 미디안과 발람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죄 짓도록 유혹하고 박해하고 타락시킨 사람들에 대한 심판은 무섭습니다. 거룩한 지체를 무너뜨리는 통로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 했을 때 아버지의 마음으로 관용과 사랑으로 대하시지만 죄에 대하여 분명 책임을 묻습니다. 타락에 연루된 두령들을 잡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무에 달아 처형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지도자들은 죄가 시작되고 파급되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악이 전염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동조하는 혐의로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진영 안에 염병이 돌아 24,000명이 죽었습니다.
발람의 저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지켜주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우상숭배와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졌을 때에는 원수를 심판 하던 칼이 동일하게 그들을 향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 문에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스라엘 자손 중 시므리라는 자가 모세와 온 회중이 보고 있는데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와 자기 텐트로 들어간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워하며 회개하고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합니다. 회개의 때를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의 표상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으로 염병이 돌아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온 회중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정욕대로 움직인 사람을 보면서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의 마음에 불같은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으로 이었습니다. 즉시 남녀에게로 들어가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렇게 참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 하였음이니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느하스가 음행 중인 그 남자와 여자를 죽이자 24,000명을 죽게 한 염병이 그쳤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비느하스가 죄를 단호하게 끊어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려 하는 죄는 단호하게 끊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게 됩니다. 아론의 손자이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제사장인 비느하스는 과감한 행동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켰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해 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거룩함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죄에 대해 죽지 않는 한 죄의 유혹은 죽는 그날까지 이어지고 말 것입니다. 죄에 대해 죽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단연코 버려야 합니다. 비느하스가 죄의 덩어리들을 처단했던 것처럼 과감하게 우리 삶에서 죄를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모압과 미디안이 합작했던 것처럼, 발람과 발락이 협작했던 것처럼 연합하여 공격할 것입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 아래 살아가기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담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예속된 자들이며 가담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죄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것들을 단호하게 끊어내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비느하스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워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자로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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