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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마 21장 23-32절

by 최수근 2023. 10. 20.

2023년 10월 8일 주일예배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마 21장 23-32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우리에게 결핍될 때 오는 여러 질병이 있습니다. 그중 ○○증후군이라는 질병들이 있습니다. 주원인이 염색체 결핍이나 손상으로 인해 야기되는 질병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가 장애우 아파트로 지어져서 여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친구들을 봅니다. 그 하나의 염색체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도 달라지게 만드는 걸까요?

이건 우리 몸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의 인격에도 여러 가지 결핍으로 인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쩜 저렇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경악스러운 모습일까에 치가 떨리곤 합니다. 뻔뻔함의 끝판왕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입니다.

이런 결핍은 일상생활과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영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 중생한다는 것은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의 모습으로 서는 것인데 여전히 옛사람의 염색체로 있다면 새 사람의 염색체 결핍으로 인해 새사람으로서, 즉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면서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합니다.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우리의 신앙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까?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들이 우리 삶에 쌓여가지 않는 한 우리의 걸음은 방향을 잃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고,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거룩함을 잃어버린 말들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그런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건 그들이 하나님 말씀의 결핍, 거룩한 지식의 결핍,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한 결과들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오히려 예수님에게서 결격 사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저들을 질책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이 보실 때 이들이야말로 많은 것이 결핍된 상태였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채로 요란하기만 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없어야 할 것이 이들에게 넘쳐났습니다. 시기, 질투, 낮은 자존감 등입니다. 그러니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드니까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요.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와 물었습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도발하는 것입니다.

21:23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저들이 볼 때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공부하는 학교에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영적 리더십을 부여하는 어떠한 공식적인 공인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적으로 성직을 받지 못한 시골 목수가 유대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사실에 종교 지도자들은 불편했던 거고 예수님에게 너는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냐, 불법 아니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들의 도발적인 질문에 대답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21:24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1:25a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유대 사회에서 세례 요한의 신망은 매우 컸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도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껄끄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자기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세례 요한에 관한 질문을 던지셨어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음성이 하나님의 권세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들을 옴짝달싹 못 하도록 만드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딜레마였습니다.

이건 바로 예수님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향해 이 일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딜레마 앞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1:25b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1: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이들은 정작 무서워해야 할 하나님을 보지 않고 백성을 무서워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적인 권위가 추락할 위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 위험을 차단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가타부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21: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그들이 정녕 몰랐을까요?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 된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분명 알고 있으면서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로써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부정직하였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마음이 굳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적인 권위가 손상되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그것은 사람 앞에서의 문제이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심각한 사태입니다.

알지 못했다. 몰랐다라는 대답은 요즘 인사청문회에서 많이 들려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몰랐다는 말로 자신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죠.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말고 요한의 정체를 직면해야만 합니다.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며 피하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질타당한 겁니다. 위선자라고 말입니다.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들이 정직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21:27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아들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1: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큰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잘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싫다고 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여 포도원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와 같은 비유를 말씀하신 걸까요?

큰아들은 대답만 잘했지, 행동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말은 그럴싸하게 하면서 그 말을 뒷받침하는 행동에는 취약함을 드러냅니다. 그건 정직하지도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 게으름이고 악함입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거절했지만 실제로는 뉘우치고 포도원을 갔습니다. 말은 싫다라고 했지만, 그는 뉘우치는 자였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던 겁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예수님의 덫에 딱 걸렸습니다. 그들이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21:31b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답은 너무나 분명하여 제사장들은 이번에는 무지를 핑계 삼아 답을 회피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첫째 아들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세리들과 창녀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작고 소외된 자들입니다. 이야기의 첫째 아들과 같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온갖 바른말을 다 해대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그분의 포도원(이스라엘)에서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요한에 관한 질문으로 예수님이 제기하셨던 주된 고소가 정직성의 결여였다면 이 비유는 행동의 결여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정직의 결여, 행동의 결여는 불신앙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21:31c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세리와 창기로 대변되는 사람들, 그렇지만 세례 요한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언을 통해서 참된 의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회개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처음에 일하러 가기로 동의했지만 가지 않은 아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외적으로 순종했지만 하나님이 그의 사자인 요한을 보냈을 때 그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멸시받던 세리들과 더러운 죄인들은 회개하고 요한의 가르침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갔지만, 종교적 권위자들은 요한이 사역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그 후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32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이들에게서 회개의 결여, 신앙의 결여, 그리고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는 고약한 불순종의 죄목을 들어 지도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늘에서 왔음에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대답에 알지 못하겠노라고 발뺌했습니다. 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세례 요한을 믿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에 뉘우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순종을 원하십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말은 많이 하나 말에 따른 삶을 살지 않는 위선자였습니다.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고 모세오경에 충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일하라고 부름을 받았지만,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경건한 척하면서도 결국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불순종으로 인한 행동은 결핍은 세리들과 창녀들이 대제사장과 장로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신 이유가 된 겁니다.

예수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단순한 말의 문제 이상으로서 이는 항상 행동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고 말하거나 혹은 앞으로 행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행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말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행동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의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20: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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