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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환경들(1) :창2장1-9절

by 최수근 2014. 1. 26.

2014년1월26일 주일설교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환경들(1): 창2장1-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망가진 세상

지난 월요일에 참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어렸을 적 흰 눈이 펑펑 내리면 골목으로 달려 나가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눈싸움하고, 눈사람 만들고, 눈 위에서 뒹굴고, 놀다가 목마르면 눈을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감성이 좋은 사람들은 내리는 눈을 보면서 시를 낭송하기도 합니다.

    눈 내리는 겨울 아침 가슴에도 희게 피는 설레임의 눈꽃

    오래 머물지 못해도 아름다운 눈처럼 오늘을 살고 싶네

    차갑게 부드럽게 스러지는 아픔 또한 노래하려네

    눈처럼 사랑하려네 신()의 눈부신 설원에서

    나는 하얀 기쁨 뒤집어쓴 하얀 눈사람이네

하지만 그렇게 눈 내리던 날 어린 시절 추억도, 눈을 보며 읊었던 시도 오염덩어리인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얀 눈 속에 미세 먼지 등 오염물질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눈을 맞지 말라고 하니, 참 큰일입니다. 그래도 순진한 아이들은 맞지 말라 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해맑은 얼굴로 눈을 맞습니다.

한 겨울 눈밭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앗아간 심각한 지구의 환경오염은 세상을 잘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위임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들이 온전하게 수행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처럼 인간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창조의 질서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온통 자연만물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 죄가 인간세계에 들어오면서 인간에게 부여해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죄는 타락한 인간들 속에서 확장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이 땅에서 악의 세계는 점점 거대해졌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거룩함보다는 세상의 악한 모습이 더 창궐해보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생명들이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환경입니다 

하나님이 조성하신 환경

하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청정 환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혼돈 가운데 질서와 조화로움을, 공허가운데 풍성하게 채워주신 것들을 누림으로써 인간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생육 번성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특별하게 사람을 대우하셨습니다. 2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께서 조성하시고, 돌보시는 환경 가운데 거하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인간에게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처한 환경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무균질의 환경을 인간에게 마련해주셨습니다. 그 점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은 전적으로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동산은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에 누리고 살았던 세상의 환경과는 비교될 수 없는 거룩함과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환경으로, 지금 우리 안에서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처럼 섬세하게 동산의 설계자가 되어서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 피조물의 운명이 인간 스스로가 만든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놓으신 거룩한 세계 안에서 사는 데에 있음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그와 함께 그 환경 안에서 그것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어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조성해주신 맞춤 환경은 어떤 것입니까? 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하나님이 이루어놓으신 최적의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안식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주신 첫 번째 영적인 환경은 안식일입니다. 이 날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예수님은 막22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주어졌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 안식일을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시 던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2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창조의 세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6일 간에 모든 창조사역을 마치신 하나님은 안식을 하셨습니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신 일로 피곤하여 일곱째 날에 앉아 쉬셨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참 큰일을 해냈어! 지난 6일 동안 엄청나게 일했으니 이제 좀 쉬고 싶구나!”그래서 쉬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치고 피곤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었고, 그 완성된 은혜의 자리로 사람을 초대해주시기 위해 안식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안식의 자리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쉼의 날, 곧 안식의 날을 제정해주셨다는 것입니다. 6일간의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심을 통해 인간들이 안식해야 할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어떤 질서로 살아가야 할지를 몸소 실천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임을 의미합니다.

더욱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운 것은 그 날을 특별하게 구별시켜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7일의 시간 가운데 하루를 거룩하게 구별하셨고, 복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려야 할 안식의 날이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는 6일간의 시간과는 구별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6일에 단순히 하루가 덤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입니다.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은 일상에서 사람들이 누리는 육체적인 휴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식을 통한 쉼

물론 인간의 삶에서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쉼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쉼은 없고 일만 해야 한다면 그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겠습니까? 그러기에 창조가 끝난 일곱째 날에 이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고,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출애굽기208-11절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에서도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이유를 창조 후에 있었던 하나님의 안식에서 찾으면서 다음과 같이 모든 사람의 쉼을 강조하였습니다.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이처럼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먼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하나님의 안식하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원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안식

이와 함께 안식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구속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신명기512-15절에선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창조가 아닌 출애굽 구원 사건에서 찾고 있습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의 이러한 새로운 안식일 개념은 출애굽 사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행동과 안식일을 관련시킨 것입니다. 이로써 안식일 계명은 창조와 구원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세워주신 영적인 질서 안에서 쉬는 날로써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을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은혜로서 새롭게 채워지는 날로 드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안식일이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날로 전환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그 날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하면서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날 초대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수고의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었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구원 안에서 하나님 주시는 참 안식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안식을 통해 영적인 회복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서 다시금 삶의 현장으로 파송되도록 하는 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안식한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들의 신앙을 선언함과 동시에 그간 세상에서 누렸던 쉼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한 주간 일하고, 고된 몸을 위한 육체적인 쉼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격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 안에서 채워지고, 그 은혜를 누림으로써 거룩한 생명이 성장하고 이 땅에서 구별됨을 이루어가는 데 안식에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모든 수고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영혼이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 종일 자는 잠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좋은 곳에서 여가를 누린다고 해서도 될 일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결코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로서 주일성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생명이 이어져가는 힘이 이것을 지킴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 안에서 안식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겠다는 결심인 것이죠. 그 점에서 주일성수는 율법적인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생명이 거해야 하는 필수 환경입니다. 이걸 떠나면 우리의 거룩한 생명이 반드시 죽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별된 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존재가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성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전인적인 교제함을 통해서 생명의 풍요로움을 이루어가야만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거룩한 성전

그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신 두 번째 영적인 환경은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삶입니다.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미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 육체에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는 점에서 인간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타락은 그 환경을 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과연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타락한 인간의 모습처럼 자신의 충동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성전으로서 삶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안식의 축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주신 환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래 창조된 우리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모시고 사는 성전이라는 환경에 있습니다. 그 분의 임재의 처소로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고, 우리의 삶을 세워 가시는 은혜가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전으로서 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에 걸 맞는 양식을 제공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건강상태는 지금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먹거리의 환경에 달려있습니다.

생명나무: 허락하신 양식

8절에서 보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그곳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9절에 보니까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였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하나님 은총의 차원을 드러내 줍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의 삶으로서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별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먹거리 환경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어린 아이에게 주의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듯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시켜 주셨습니다. 은혜로 주신 것들은 먹으면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혜로 주시지 않은 것들을 나의 욕심으로 먹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더 이상 거룩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먹거리 환경에 대한 선택을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두 갈래 길은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을 선택 했느냐에 따라 결정지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공급받아야 할 양식은 은혜로 주어진 생명나무입니다. 너희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결코 아닙니다.

오늘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허락하신 생명나무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생명의 음료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신다는 개념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것을 말합니다. 65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리얼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떻게 생명의 만나이신 예수님을 먹을 수 있습니까?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또 기록된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통독함으로써, 또한 성경말씀을 조목조목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또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거룩한 양식의 공급을 통해 그 영적 에너지를 힘입게 되면 우리는 거룩한 성전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거룩한 환경의 은혜를 우리에게 이미 제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자리를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환경을 우리 안에 다시금 회복합시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으로 이 땅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거룩한 삶의 환경이 우리에게서 회복될 때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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